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8/07/05 왜 스몰츠인가? (7)
  2. 2008/06/06 시원하고 커다란 한 방! (8)
  3. 2008/05/01 아드레날린 뿡뿡 (2)
  4. 2008/04/23 삼 천 포 (12)
  5. 2008/03/06 타이거 우즈 vs 존 스몰츠 (2)
  6. 2008/02/28 테드 터너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6)

왜 스몰츠인가?

MLB 2008/07/05 22:0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 경기 전 애틀랜타 불펜에 반가운 얼굴이 모습을 비췄다. 존 스몰츠. 올시즌 마이너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다, 메이져에 올라와서는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영건 찰리 모튼을 가르치고 있었다. 스몰츠는 얼마 전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아 현재 시즌아웃된 상태. 모튼을 가르치는 내내 스몰츠는 오른팔을 꿈쩍도 하지 못한 채 왼손으로 이리저리 가르키며, 가르치고 있었다. 이제 식을 때도 된 것 같지만, 스몰츠는 야구공이 그렇게도 좋은지 움직이지도 못하는 오른손에 야구공을 꽉 쥐고 있었다.

스몰츠는 좋은 유망주이다. 스몰츠..유망주..? 이건 뭥미?! 그래, 이제 힘든 재활을 포기하고 유니폼을 당장 벗더라도 명예의 전당행이 확실시되는 노장 투수를 가리켜 유망주라 한 건 아니다. 스몰츠는 좋은 지도자 유망주이다. 그의 야구 인생을 되돌아보면, 그리고 위와 같은 식지 않은 열정을 보노라면 정말 큰 기대가 된다. 애틀랜타 감독 존 스몰츠. 투수코치 존 스몰츠..아직 낯설겠지만, 두고 보시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포스트시즌 최다승의 스몰츠는 2000년 플레이오프 NL 디비젼에서 팀이 세인트루이스에게 허망하게 지는 걸 벤치에서 바라만봐야 했다. 팔꿈치 수술로 공을 던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타격에도 소질이 있는 스몰츠는 이때 바비 칵스 감독에게 본인을 타자로 로스터에 포함시켜달라고 부탁했었다고 한다. 물론 씨알도 안맥히는 부탁이었지만, 이때 만약 칵스 감독이 스몰츠를 타자로 기용했다면, 우린 개그니와 구원왕 경쟁을 펼치던 스몰츠도, 3000K를 달성한 스몰츠도 못볼뻔 하지 않았나 싶다.        ..아, 물론 릭 앤키엘보다 앞서 팀의 4번타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스몰츠는 투수가 겪어야 하는 가장 큰 부상을 모두 경험했다. 팔꿈치와 어깨 부상. 1990년대 후반, 스몰츠는 지긋지긋한 팔꿈치 부상으로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팔꿈치가 아파오자, 오버핸드 투구폼에서 쓰리쿼터, 사이드암, 너클볼러 등 다양한 투구폼으로 공을 뿌렸다. 당시만해도 지금처럼 토미존 서저리가 익숙치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아픈 팔로 마운드에 남았던 스몰츠는 결국 토미존 서저리를 받았고, 열심히 재활한 덕에 싱싱한 구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애틀랜타 투수진의 구성 문제도 있었고, 스몰츠의 순조롭지 못한 복귀도 있고 해서, 2001년 토미존 서저리에서 돌아온 스몰츠는 몇 번의 선발 등판 끝에 마무리로 변신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2005년 팀 투수진 구성 문제와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다시 선발로 복귀했다. 90년대의 영화는 뒤로한채 점점 나빠지는 팀 전력때문에 무리를 한 까닭일까. 스몰츠는 올해 어깨에 탈이 왔고, 현재 어깨 수술을 받고, 시즌을 일찍 마감한 상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몰츠에게 있어 탄탄대로란 없었다. 지금도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을만큼, 부상도 부상이지만, 부진도 한부진했었다. 메이져리그 4년차였던 1991년에는 전반기 2승 11패를 기록하며, 지독한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 또한, 풀타임 마무리 첫해였던 2002년 4월엔 0.2이닝 8자책 희대의 대방화를 포함해, 지금의 조 보로색히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깨진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겨내면 그 뿐이다. "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쏘냐!" 라는 정신으로. 1991년 스몰츠는 수많은 주위의 조언과 개인 상담사와의 꾸준한 상담으로 후반기엔 12승 2패를 기록하며 완벽하게 슬럼프를 탈출했다. 나아가 그 해 월드시리즈에 진출해서는 미네소타 에이스 잭 모리스와 지금도 회자되는 희대의 투수전을 펼치기도 했다. 2002년엔 어떠했는가. 4월에 저렇게 처참히 짓밟혔지만, 결국 그해 55세이브를 기록하며 NL 세이브 최다 기록을 갈아치워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 왼손 투수만의 문제점은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말곤 스몰츠가 겪어보지 못한 일이란 없다. 딱 지금의 애틀랜타 루키 투수 자이어 져전스와 같은 출발이었다. 디트로이트에서 건너온 듣보잡 유망주. 그리고 지금은 한 차례 사이영상과 통산 3000탈삼진, 포스트시즌 최다승을 비롯, 전무후무한 200승 200세이브를 향해 항해를 멈추지 않는 현역 레전드가 되었다. 그사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누구보다 수많은 난관을 겪었고 말이다.

덩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힘들다는 찰리 모튼과 같은 유망주를 보면, 그 누구보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잘 알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데 내 어찌 좋은 지도자 유망주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모튼을 가르치는 모습에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하나는 지금껏 말해왔던 것 처럼 좋은 지도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반가움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이제 어쩌면 저런 모습밖에 볼 수 없구나',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을까'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래, 아직 스몰츠의 현역은 끝나지 않았다. 오른팔을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오른손에 야구공을 손에 꽉 쥔 고집스런 40대 대머리 아저씨의 집념을 그 누가 말릴 수 있으랴.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 Comments 7

시원하고 커다란 한 방!

MLB 2008/06/06 12:4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로 나이스 타이밍에 터진 커다란 한 방이다. 켄 그리피 주니어의 600번째 홈런이 터진 뒤라면, 작은 한 방이었을 것이고, 매니의 500홈런 직후에 터졌다면 묻혔을테니 말이다. 아, 아, 진정 나이스 타이밍이란 그게 아니지. 바로 스몰츠를 잃은 애틀팬들의 등을 토닥여 준 위로의 한 방이기 때문에 나이스 타이밍인 것이다.

전설의 500홈런 클럽도 시시해진 요즈음 사실 400홈런이 그 무슨 대수이겠느냐만은, 그 무슨 대수는 이산에서 찾길 바라며, 앞선 의미도 의미이거니와 치퍼의 400홈런은 매우 값진 기록임에 틀림없다. 레전드 미키 맨틀과 에디 머레이에 이은 MLB 역대 세번째 스위치 히터 400홈런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위치 히터.. 참으로 묘한 다섯 글자이다. 지금 당장 MLB 로스터를 살펴보면 스위치 히터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정도로 어느 정도 그 수는 있다. 그렇지만 뛰어난 활약을 오랫동안 펼친 스위치 히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어제까지 스위치 히터로써 통산 홈런 400개 이상을 때려낸 선수가 맨틀과 머레이, 단 두 명 뿐이라는 것에서도 쉬이 알 수 있잖은가. 한 타석에서만 치는 타자들도 슬럼프가 잦고, 은퇴하는 순간까지 타격 연습에 매진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게 야구이며, MLB이다. 여러 장점들이 있어 뵈고, 쉬울 것 같은 스위치 히터는 이러한 많은 연습량과 그 효율성때문에 사실 힘든 '직업'이다. 그렇지만 스위치히터가 좋은 다섯 가지 이유가 여기 있다.

첫째, 좌완스페셜리스트와 같은 직업과 그 직업을 가진 투수를 투입하려는 감독의 의지 상실이 있다. 일단 전술 싸움에서 스위치 히터가 무조건 한 수 잡고 들어가는 것이다.

두번째, 부진에 빠진 선수들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좌상바' '우상바'라는 말이 있다. 좌투수 상대 바보, 우투수 상대 바보라는 말이다. 대게 우타자는 우투수에게, 좌타자는 좌투수에게, 특히, 좌타자의 경우가 심한데, 스위치 히터는 그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세번째, 유망주들에게 좋은 옵션이 된다. 크게는 두번째와 같은 맥락이며, 좌우 타석에 모두 들어서며 어떤 타석에서 본인이 더 나은지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라델피아 레전드 마이크 슈밋이 원래 스위치 히터였으나, MLB에서 우타자로 활약하며 맹위를 떨친 사례가 있다.

네번째, 네..번..째..네..번....째.. 팬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다람쥐 챗바퀴 돌 듯 똑같은 야구 경기동안 스위치 히터가 상대 투수가 바뀜에 따라 타석을 오가는 모습은 최소 1초 동안이라도 팬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가 되니 말이다.

다...다섯번째는 바로 헬멧 제조 시장의 활성화이다. 치퍼의 경우만 봐도, 좌타석용 헬멧, 우타석용 헬멧, 이렇게 두 개의 헬멧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바로 헬멧 제조 산업에 큰 매출 상승 요인으로 직결된다. 스위치 히터가 한 명 늘수록 우리네 일자리가 하나 더 늘어날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 결론은 오늘 치퍼의 통산 400번째 홈런은 값진 기록이란 이야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다. 랜스 버크만, 카를로스 벨트란, 티렉스가 장차 치퍼의 기록을 넘어설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 또 3000K 클럽에 가입할 것이고, 매니의 500홈런도 수많은 500홈런 클럽 리스트의 한 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봤는지 안봤는지, 응원했는지 안했는지, 가슴이 뛰었는지 졸였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수첩에 두 개 남았다. 모두 끝없는 설레발을 보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1 : Comments 8

아드레날린 뿡뿡

MLB 2008/05/01 19:1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4월 한 달 동안 무려 7번의 1점차 패배를 당하고 있는 애틀랜타. 그 중심엔 스릴 만점의 불펜이 있다. 불펜 원투펀치 라파엘 소리아노와 피터 모일란이 빠져 요즘 그 위력이 더욱 배가되고 있는 즈음, 햄튼과 제임스의 땜방 선발을 봐왔던 제프 베넷이 간만에 불펜 등판했다. 현지 시간 4월의 마지막 날, 4월 30일 워싱턴 원정경기, 점수는 1:1, 경기는 9회말 2아웃 1사 1,2루였다.

무표정을 넘어 모두들 이런 상황엔 긴장을 바싹 한 채 마운드에 향하건만, 도전을 좋아하는 베넷에겐 흥미로운 순간이었나보다. 보이어와 링의 폭풍 2연속 힛 바이 피치로 주자가 모인 상황. 베넷이 웃으며 등판해, 코피를 쏟자 상대 타자 래스팅스 밀리지는 본인 역시 힛 바이 피치로 나가리라 생각하게 됐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알 수 없는 미소와 코피 덕에 결국 밀리지는 막았으나, 이 베넷의 코피는 결국 애틀에게 큰 화를 몰고 왔다. 10회부터 11회까지 2이닝을 그럭저럭 막은 마무리 매니 아코스타가 결국 연장 12회 코피때문에 경을 치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장 12회 무사 1,2루에서 상대 번트를 투수 앞 땅볼로 만들어냈지만, 그만 베넷의 피에 미끄덩..결국 무사만루가 됐다. 피눈물 부상 사유로 결국 마운드는 추억의 버디 커라이어가 긴급히 교체 투입되었고, 연장 승부가 지루했던지 커라이어는 공 1개로 끝내기 안타를 맞아주고 서둘러 경기를 끝마쳤다.



웃음, 공포, 슬픔, 분노..모든 감정을 이끌어내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응원하기」불행인지, 다행인지, 큰형님 스몰츠가 오늘 중대한 발표를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불펜 복귀죠. 오늘 비록 피눈물을 흘렸지만, 매니 아코스타라던지, 쾌조의 단계를 넘어 환희의 재활을 펼치는 마곤이 예상보다 몇 개월 앞당겨, 곧 복귀한다는 점 등 불펜이 아주 쑤레기는 아닙니다. 아쉽다면 비록 새가슴 소릴 듣지만, 8회 셋업이라면 누구 부럽지 않은 라파엘 소리아노의 길어지는 재활이지만. 모일란이 빠져 아쉽지만, 이들 불펜 3인방이 자리를 잡는 시점과 함께 스몰츠의 어깨도 정상화되어 로테이션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1회부터 9회까지, 365일 웃음만 가득한 야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Would you Plz 같이 응원할래?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 Comments 2

삼 천 포

MLB 2008/04/23 16:5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저기 MLB팬이라면 모르는 분들이 없는 소식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애틀팬이자 스몰츠팬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야 없지요. 작년 절친 탐 글래빈의 300승 즈음의 인터뷰에 스몰츠는 "왜들 그리 숫자에 집착하느냐? 300승에 뭔 의미가 있다고.."라고 친구의 대기록을 폄하(?)하며 본인은 숫자, 기록 나부랭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대인배임을 강조했지만, 스몰츠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경기 후 인터뷰에 "오늘 비록 졌지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기록 달성을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요. 처음엔 테드 터너(前애틀랜타 구단주)가 와서 축하해주는 줄 알았는데, 여러번 확인해 본 결과 레오 마조니(前애틀랜타 투수코치)였습니다. 1979년부터 2005년까지 애틀랜타의 투수코치로 있으면서 소위 사이영 트리오를 주물렀던 할아버지죠. 아마 위 캡쳐사진 인화해서 동네 마실나가며 "스몰츠 내가 키웠어"라고 할 것 같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 컵스에서 사이영상을 받고 FA로 애틀에 온 매덕스, 가르치다 가르침을 당할 것만 같은 글래빈과 달리 타미존 수술, 마무리 전환, 선발 복귀를 비롯해 숱한 부침을 겪은 스몰츠이기에 애정이 남다를만도 할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다른 절친 그렉 매덕스도 축하의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스몰츠가 경기가 끝나고 핸드폰을 보니 문자메시지를 보냈더랍니다. "넌 삼진 잡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빠진겨. 이젠 다 빠졌구나 ㅋㅋ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보다 스몰츠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애틀의 포수 브라이언 맥캔입니다. 애틀랜타 토박이인데다 데뷔 전까지 애틀랜타 팬클럽 회장에, 스몰츠의 열혈팬이었지요. 프로 데뷔 역시 자니 에스트라다가 주전 포수이던 시절, 스몰츠의 전담 포수로 데뷔했지요. 그리고 오늘 3000K의 포수..오늘 3000K 때 스몰츠보다 3000K를 더 좋아한 사람도 아마 맥캔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토록 언론에서 사상 "16번째 3000K 클럽 가입"을 외치고 있지만, 바비 칵스 감독은 스몰츠의 3000K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라고 하자, "이번 스몰츠가 사상 첫 3000K 맞죠?"라며 짤막하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절친 글래빈은, "아 ㅆㅂ 저색히는 왜 이리 힘이 남아돌지"라는 역시 짤막한 인터뷰로..(진짭니다!)











스몰츠 타석 등장 음악. 썬더스트럭이 마치 쐄천(3000)처럼 들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재미있는 수치 놀이를 하나 해보자면 햄토리의 통산 탈삼진 숫자는 1272개. 애틀에서 연평균 70개의 삼진을 잡았으니, 앞으로 은퇴할 때까지 애틀에서 뛴다는 참혹한 상상을 하자면, 앞으로 24년을 더 뛰어야 3000K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 Comments 12

타이거 우즈 vs 존 스몰츠

MLB 2008/03/06 13:40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애틀 입단?


다른 모든 선수들이 2008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시범 경기에 한창인 요즘, 존 스몰츠는 두문불출이다. 바로 신무기 장착을 위해서다. 미국 플로리다의 올랜도 월트 디즈니 스포츠 센타에서 특훈 중인 스몰츠는 투심과 체인지업 연마에 힘쓰고 있는데, 빠르면 3월 15일, 늦으면 시범 경기 등판을 딱 한 번으로 바로 정규시즌에 신무기와 함께 투입할 것이라 한다.

PGA 투어가 한창인 요즘, 타이거 우즈도 두문불출이다. 베스트 프렌드, 존 스몰츠와 놀기 위해서이다. PGA 투어에 참가하는 대신 자신의 골프장 근처에서 연습을 하는 스몰츠와 글래빈, 프랭코어와 함께 골프를 쳤고, 신무기 임상실험이 필요한 스몰츠의 요청으로 말미암아 어제 야구장에 나타났다. 준비된 애틀랜타 유니폼, 헬멧과 함께.

임상실험에는 골프를 함께 쳤던 타이거 우즈, 제프 프랭코어 그리고 스몰츠 의제 허드슨과 부상 중인 치퍼 존스가 참가했다. 시범 경기에 출전하고 있던 브라이언 맥캔이 특별히 스포츠 센타로 날라와 포수를 봐줬다.

내기 골프에서도 단 한 번도 스몰츠에게 봐준 적이 없었던 타이거 우즈. 그리고 승부욕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스몰츠. 비록 임상실험이었지만, 우즈의 첫 두 타석은 삼진으로 스몰츠가 복수했다. 그렇지만 역시 운동신경이 좋은 우즈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세번째 타석에서 풀카운트 접전 끝에 볼넷을 얻어냈다. 소기의 임상실험을 마친 스몰츠는 네번째 타석과 다섯번째 타석에서는 서비스를 했다. 75마일짜리 패스트볼만 연신 뿌려댔고, 우즈는 연거푸 썩 괜찮은 타구를 날려냈다.


"스몰츠 형은 얄짤없어요. 타석에 누가 들어서든 언제나 최고의 피칭을 하죠. 타이거 우즈처럼 상대가 야구선수가 아니라면, 병진되기 쉽상이죠." - 브라이언 맥캔


"사실 엊그제 골프장에서 타이거 우즈가 스몰츠 형을 병진으로 만들었거든요. 오늘 분위기 싸해지는 피칭도 이해안되는 바 아니죠." - 제프 프랭코어


관심의 대상이 아녔던 팀 허드슨은 쑥쓰럽게도 너무 좋아했다. 세 타석에 들어서 두 개의 깔끔한 안타를 뽑아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타석에서 치퍼 존스는 2개의 장타를 날리고도 아무 말이 없었지만..


"타율 .667에 3타점이군요." - 팀 허드슨

이벤트가 아닌 순수 임상실험이 끝난 뒤, 현재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소식은 전해진 바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스로 인두질을 하는 고문 끝에 명품 투수는 탄생한다.
- 춘 선생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 Comments 2

테드 터너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MLB 2008/02/28 20:24

'테드 터너, 꿈이 있는 승부사'라는 책을 읽고 나서, 저를 포함한 제가 만난 많은 애틀랜타 팬들과 메이져리그 팬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어 글을 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前애틀 구단주 터너와 前애틀 에이스 매덕스


테드 터너, 태리 맥궉 그리고 제럴드 레빈

젊은 시절 터너는 아버지로 물려 받은 애틀랜타 옥외 광고 사업자였다. 그렇지만, 당시 미국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텔레비전'에 매료되어, 이내 미디어로 업종을 전환한다. 여러 애틀랜타 지역 라디오 방송국을 인수한 뒤, 가까스로 애틀랜타 지역 케이블 방송국을 열게 되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충신인 테리 맥궉은 터너에게 고용되어 함께 미래를 향해 출발하게 된다.

터너는 미국의 공중파 ABC, NBC, CBS가 싫었다. 자극적이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프로그램들이 시청률을 위해 앞다퉈 방송되고 있었고, 무엇보다 소수의 애틀랜타 근처 주민들만 보는 터너의 방송에 비해 미국 전역의 시청자들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1975년, 미국과 소련이 인류최초로 통신위성을 쏘아 올렸다. 위성방송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가장 먼저 위성방송의 위력을 간파한 사람은 다름 아닌 훗날의 숙적, 제럴드 레빈이었다. 여전히 발매되고 있는 잡지 '타임'의 회사 Time 역시 케이블 방송국을 가지고 있었는데, 역시 여전히 유명한 HBO(홈 박스 오피스)로써 당시 애틀랜타 지역 케이블 방송국에 영화만을 방송하는 방송국이었다. 그리고 레빈은 이 HBO의 사장이었다. 레빈은 위성안테나를 이용해 위성방송으로 공중파와 경쟁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고, 앞장서 위성방송을 주도했다. 터너 역시 이때다 싶어 위성방송에 합류했고, '애틀랜타 케이블 17'에서 TBS(터너 브로드캐스팅 시스템)으로 방송국 이름을 고쳤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인수

막장 드라마보다는 건전한 프로그램과 야구 중계를 방송하길 원했던 터너는 1976년 당시로써도 저렴한 1000만달러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인수했다. 터너는 이후 애틀랜타 홈경기를 늘 관람했다. 경기 중간에는 그라운드에 뛰쳐나가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을 선창했으며, 애틀랜타 선수가 홈런을 때리면 역시 경기장에 달려 들어가 홈플레이트에서 하이파이브를 할 정도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미 카터와 NBA 애틀랜타 호크스의 조 존슨


1977년 역시 애틀랜타 출신인 지미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애틀랜타 유명인들을 초청해 파티를 가졌는데, 이때부터 터너와 카터 그리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우정이 시작되었다. 카터는 퇴임 이후 팔순이 넘은 지금까지 터너필드를 찾는 빅 팬이다. 터너는 이후 브레이브스 외에도 NBA 애틀랜타 호크스와 NHL 애틀랜타 트래셔스도 인수했다.


CNN, 피델 카스트로, 걸프전, 굿윌게임

사람들에게 좋은 방송을 해야 한다는 터너의 눈은 곧 뉴스로 옮겨졌다. 직원 숀펠드의 아이디어로 세계 최초로 뉴스 전문 채널을 만든 것이다. 터너는 정보를 모든 이가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24시간 글로벌 뉴스 채널, 'CNN'을 개국했다. 당시 미국 공중파는 많은 몸값을 받는 유명 앵커들이 전부인 뉴스였는데, 터너는 이런 인기 앵커의 비용을 줄이고, 취재와 보도에 힘을 쏟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피델 카스트로


그렇지만 역시 텃새는 심했다. 공중파 3사 ABC, NBC, CBS는 손을 잡고 CNN을 없애려 했다. 방송국 합동 취재에 CNN을 합동으로 밀어내는 등 CNN의 입지를 죄어왔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CNN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쿠바의 민속절 축제와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의 연설을 취재해서 방영했는데, 이를 애틀랜타 위성이 미치는 쿠바에서 카스트로가 CNN을 시청하게 된것이다. 이에 카스트로는 터너를 쿠바로 초청하게 되었고, 둘의 만남이 이뤄졌다. 보수주의자인 터너에게 있어, 공산국 독재자인 카스트로는 극과 극의 사람처럼 보였지만, 이내 터너는 카스트로로가 독재자일뿐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야구를 좋아하는 카스트로와 많은 뜻이 통하게 되었다. 이런 계기로 터너는 해외 취재와 방송에 더욱 눈을 뜨게 되었고, 1980년대 아시아와 유럽에까지 CNN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해외에 CNN을 구축하고 나서부터, 터너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세계의 많은 인권 지도자, 환경 운동가와 학자들이 그들이다. 이에 많은 깨달음 얻게 된 터너는 '더 좋은 세상'이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환경오염과 핵무기, 인구 폭발 등의 위험을 알리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및 지원하게 시작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인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미국이 불참하자, 1984년 LA 올림픽에 소련이 불참해버렸다. 이에 터너는 양국 화해를 위해 '굿윌게임'을 창설하고, 재정을 지원했다. 이때 터너는 미국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한다.

*굿윌게임(Goodwill Games) : 올림픽과 올림픽 사이(월드컵이 열리는 해와 같다) 미국과 러시아가 돌아가며 개최하는 국제 종합 스포츠 대회.
 
그러나 이때까지만해도 여전히 CNN은 공중파 3사 뉴스에 비해 입지와 시청률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1990년 뜻하지 않은 기회가 왔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걸프전이 발발한 것이다. 다른 방송사들이 모두 취재를 꺼려했고, 이라크의 모든 통신 장비 시설이 파괴되고 있는 이상 취재 여건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터너는 취재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위성 장비로 유일하게 취재에 성공한 것이다. 결국 미국 공중파 3사는 CNN의 취재 장면을 인용하기에 이르렀고, CNN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뉴스 채널이 되었다.


1조 기부, 빌 게이츠 자극

충신 테리 맥궉에게 TBS 사장 자리를 물러주고 나서 터너는 보다 사회 봉사에 눈을 돌리게 됐다. UN의 세계 평화 프로그램을 위해 코피 아난 前UN 사무총장에게 1조를 기부한 것이다. 터너의 이러한 거액의 기부 역시 세계 최초의 거액 기부였다. 터너는 재벌들을 나무랐고, 결국 당시 가장 돈을 많이 벌던 게이츠는 홧김에 25조를 기부하기에 이르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ㅆㅂ 왜 나만 갖고 그래



쇠락

앞서 언급한 숙적, 타임의 제럴드 레빈은 이후 워너 브라더스 사를 합병해 '타임 워너'라는 대형 미디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보다 큰 미디어 세계로의 갈망과 자금난에 터너의 TBS는 결국 레빈의 감언이설로 타임 워너에게 인수 합병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미디어의 큰 변화가 일었고, 기존의 미디어 회사들이 고전하는 동안 인터넷 통신 관련 회사들이 급부상하게 되었다. 이때 미국에서 가장 큰 통신 회사 AOL이 쇠락하던 타임 워너와 인수 합병을 제시하게 된다. 야심가 레빈은 'AOL 타임워너'를 터너 몰래 성사시키고, 터너를 회사 경영 1선에서 몰아냈다.

'AOL 타임워너'는 가히 인류 역사상 최대의 기업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터넷을 독점하고 있는 AOL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컨텐츠(방송국, 잡지, 영화, 음반, 엔터테인먼트 등)을 보유한 타임 워너가 시청자와 소비자 독점에 나섰기 때문이다.

워너브로스가 만든 영화를 텔레비전(TBS 보유 여러 채널 등)에서 소개하고, CNN 뉴스가 이를 북돋고, AOL의 인터넷이 현혹한다. 모든 미디어를 점령한 AOL 타임워너가 모든 시청자를 모두 자기들의 소비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이는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원대한 계획은 AOL 측과 타임워너 측의 갈등 그리고 2001년 9­­ 11사태 후 무너진 경제로 인해 산산조각났다. 그리고 세계 최고였던 CNN 역시 저조한 시청률때문에 AOL 타임워너 측에 지원받지 못하고, 그 저널리즘을 상실해버렸다. 이때, 레빈의 의해 경영 1선에 밀려난 터너는 여전히 AOL 타임워너의 최대 개인주주였지만, 9 11 사태 이후 주식이 폭락해 개인 재산도 거의 잃게 됐다.


'첫 작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영원히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 활동과 기부를 이어간 터너는 2003년과 2005년에 걸쳐 타임워너의 주식을 거의 처분하게 되었고, 터너의 TBS와 타임워너, AOL 타임워너로 그 소유권이 이어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역시 이제 더이상 터너의 구단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던 2007년 2월 터너의 오랜 친구인, 리버티 미디어의 존 맬론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타임 워너 측으로부터 다시 찾아 왔다. 리버티 미디어가 보유한 타임 워너의 주식과 맞바꾼 것이다. 그리고 맬론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CEO로 터너의 영원한 충신 테리 맥궉을 앉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애틀 CEO 맥궉(왼쪽 백발), 사장 슈어홀츠(가운데) 체제는 영원하리라


완전한 자유인이 된 터너를 비롯, 구단주 맬론, CEO 맥궉 모두 예전의 열정을 많이 추억으로 간직한 할아버지들이 됐다. 비록, 애틀랜타가 과거와 같은 공격적인 경영은 힘들겠지만, 팬들을 사랑하고, 선수들을 사랑하는 전통은 영원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테드 터너요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1 : Comments 6